왜 행복하자고 하냐고냥?  -  2013.03.17 18:06

그곳에 글을 쓸때는 늘 그렇게 글을 맺는다. 
형들아. 오늘만이라도 각자 고양이들이랑 행복하자. 라고.. 

국민학교 4학년이던 꼬맹이네는 그렇게 잘사는 집이 아니었어. 
아니, 지금으로 계산하면 아마도 차상위 계층 정도 아니었을까 싶어. 
뭐라 설명하기 힘든 구조의 집이지만 묘사하라면 마당이 있는 반지하 집 정도로 묘사가 가능하겠네. 
왜정시대에 지어졌다는 집 천장을 달리는 쥐들의 우다다 소리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 



집에 고양이가 필요했겠지. 그렇게 많은 쥐들과 같이 살려면.. 
그 집에서 이사는 중학교 3학년때 나왔고, 이사를 나오기 전까지는 항상 고양이를 키웠더랬지. 

고양이에게 전용 사료를 먹인다는 걔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 
먹던 밥 나눠주며 키웠던 여러마리 고양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녀석이 있어. 

아주 오래전 일이라 이제는 그 녀석의 색깔도 잘 기억이 안나.. 
기억이 나는 건.. 

어미젖을 갓 때고 왔기 때문에 행동이 그동안의 고양이들에 비해 너무 어리숙했고, 
내가 그때까지 봤던 고양이들 중에 가장 어렸었기 때문에 어린 나도.. 누나들도 어머니 아버지도 
모두 녀석이 걱정되었더랬어. 

'이 놈은 쥐를 잡는게 아니라 쥐한테 잡히는거 아이가? ' 

돌아가신 아버지가 고양이에 대해 남기신 말 중 가장 그러하다고 생각되는 말이야. 
하지만 녀석도 고양이였어. 

밥 값했던 날.. 

잡은 쥐를 누나들 방 앞에 던져놔서 누나들 기겁한 일도 있었고, 
갖은 재롱과 애교로 집안 사람들의 애정을 독차지 했던 녀석이 얼마쯤 지나서 아이를 가졌어. 


미싱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안쓰는 자재를 넣어 둔 창고는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는데 
거기서 새끼를 낳았나봐.
경험이 없는 첫 출산... 가족들의 걱정...
어느 날인가 홀쭉해진 배를 보고 출산을 한 것은 알았지만 녀석이 새끼를 우리에게 데리고 나온 건 한달이나 지나서였다. 

한.마.리.. 

잘 거두지를 못해 죽은 것인지 한마리만 출산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미가 사랑 받은만큼 새끼도 사랑 받았었어. 
새끼 이름은 내가 지었었어.. 코니 라고.. 

지금 표현으로 하자면 물.빨.핥 하는 어미와 온 가족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던 코니와 녀석.. 
학교 갔다 오면 가방 던지기가 무섭게 녀석과 코니에게 끈 흔들어주기.. 
집앞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던 시장으로 가서 아주머니들께 생선 대가리를 얻어와서.. 
연탄불에 삶아서 주기..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정성이었던 꼬맹이였던 거 같아. 


도시 외곽에서 농사 지으시던 외할머니가 오셔서 외가에 고양이가 필요하다시며..
코니를 데려가실 때.. 서운은 했지만 우리도 종종 외가에서 고양이를 얻어왔기 때문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외가에 외사촌 누나 형들도 고양이를 좋아해서 괴롭힘 당할 일은 절대 없다는 것도 알았지.. 

하지만 코니를 보낸 후 녀석이 일주이을 잠도 자지 않고 코니를 찾아 다닐 거란 건 아무도 몰랐지. 
사람이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뭔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어렸던 나도, 감수성이 예민했던 누나들도, 좋다 싫다와 옳고 그른 것, 해야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판단이
가능했던 부모님들도 모두 공감할 수 있었어.. 

녀석의 다양한 모든 울음소리에 공통점은 '코니' 라는 걸.. 

열흘인가 일주일인가를 지켜 보던 나는 어머니께 외가에 가서 그냥 코니를 데리고 오겠다고 말씀 드렸고, 
코 찔찔이의 그런 말을 반대 안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녀석에게 당당하게 '임마... 기다리라. 내가 코니 데꼬 올끼다..' 하는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코니를 데리고 외가로 가던 택시안에서 너무 앙탈을 부려 택시를 타고 가시다가 중간에 누군가에게 
코니를 주셨다는 외할머니의 말씀.. 외가를 샅샅히 뒤졌지만 보이지 않는 코니.. 
내가 그때 눈물 콧물을 다 짜지는 않았던 것 같아. 

집에 돌아와서 녀석을 볼 낯이 없었어. 

'미안하다...못 데꼬 와따... '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녀석은 그날부터 울지 않게 되었어. 
보름쯤 지나서 녀석이 죽었을 때 일주일 넘게 울었던거 같아. 

가장 길게 울었던 사람은 우리 작은 누나.. 
아버지 눈에 눈물 흐르는 것도 처음 봤었고, 어머니가 설겆이를 하시며 화내시는 것도 처음 봤었고.. 

이후로도 고양이를 몇 마리 더 키웠고, 몇 번의 이별을 더 했지만.. 
어리고 작았던 내 가슴에서도 '선'이라는게 그어지더라. 

늘 고양이하면 그 녀석이 제일 먼저 생각나. 햇볕 드는 마루에 앉아 있으면 무릎위에 올라와서 
골골대던 녀석.... 
처음에 집에 데리고 오면 길들인다고 마당에 묶어두고 밥 주곤 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줄이 엉켜서
꼼짝 못하던 모습.. 
지붕에 올라갔는데 못 내려와서 내가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데리고 내려왔던 일... 

이사를 하고 난 이후로는 뭔가를 키운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이별하게 되었을 때의 후폭풍이 무서웠고, 
다시는 고양이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했어. 
트라우마 였다고 해도 과언 아닐 정도로.. 

지금 달이가 나한테 애틋한 이유.. 사랑스러운 이유.. 
요녀석하고는 끝까지 가보자. 행복할만큼 행복하자.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리고 이제는 달이맘도 있으니까. ^^ 




내가 왜 늘 행복하자고 하냐고? 

그 녀석의 이름이 해피(Happy)였거든..................... 더 오래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모두 모두 다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고양이와 같이 사는 이 세상 모든 집사들아. 행복해라. 
적어도 니 고양이가 너하고 같이 있는 동안에는 모두 모두 행복해라.. 
니 고양이가 고양이별에 가서도 너하고 시간을 추억해 볼 때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해라.. 

나는 해피한테 그렇게 못해줘서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다. 

나중에 언젠가 달이가 고양이 별에 가면 해피한테 내가 미안하고 미안해 했다고 전해주면 좋겠다. 

달이한테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으니까 행복할란다. 


다 같이 행복하자. 오늘 무한도전 끝날때까지만이라도.... 







posted by Bi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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